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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섭이는 전기공사 기능공 입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소규모의 전기공사 업체에 입사 하고 부터는 건설 현장 보다는 주택의 리모델링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서울의 어느 구청과 계약을 맺고 부터는 그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국가 시설물 하자보수를 하고 더러는 신설 공사도 하고.. 그러면서 준섭이는 관리를 하고 있는 공무원을 만나는 일이 잦아 졌습니다.
구청의 공무원들이 나와 있는 출장소에는 서넛의 구청 직원들이 있습니다.
준섭이는 그곳에 출근해서 눈도장을 찍고 지시가 내려온 일들을 전기 기능공들을 데리고 일을 하고 그 일한 만큼의 공사비를 한달에 한번씩 서류 작성에서 청구를 하고 회사에서 월급을 타면 그만 입니다. 힘든 건설현장 일보다는 고생이 덜한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준섭이는 많이 힘이 듭니다. 왜 준섭이가 힘들어 할까요. 그 이야기가 궁금 하지 않으세요?
준섭이가 구청직원들이 나와 있는 출장소에 출근한지 몇일째 되는 날 구청 직원들로 부터 희안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인즉 "우리가 밥을 먹는 단골 식당이 있는데 우리가 장부에 외상으로 올려 놓을 테니 한달에 한번씩 결제를 해달라 그러면 우리가 당신이 공사금액 청구할때 알아서 올려 주겠다" 이를테면 밥값을 대신 내어 주면 공사한 내용을 담은 서류를 조작해서 그 만큼의 공사금액을 받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순간 준섭이는 망설였지만 자신 역시도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입장으로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내용을 설명해 주자 사장은 그러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또 몇일있자 그 구청직원들은 술을 같이 하자고 합니다. 준섭이는 3차까지 회사의 법인 카드로 결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술값 역시도 다음달 공사금액을 청구 하면서 서류 조작해서 청구를 했는데 구청직원들이 쉽게 무마를 해 줍니다.
이제는 그 구청직원들이 야유회를 간다고 준섭이의 사무실로 전화를 한 모양 입니다.
사장은 준섭이에게 돈 봉투를 주면서 그 구청 직원들에게 전해 주라고 합니다. 야유회 즐겁게 다녀 오라며.....
또 어느날은,
구청직원들이 머무는 관사 주위의 잡초를 제거 하려고 자신들이 일꾼을 불러서 일을 시켰는데 그사람들의 점심까지도 준섭이에게 해결 해 달라고도 맡기고 또 어느날은 자신들을 찿아온 사람들 까지 식당에 데려가 식사 대접을 하고 외상장부에 기록해 놓기도 합니다. 모두다 준섭이가 값아야할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준섭이의 사장이 값아야할 돈 이라고 해야 맞겠지요.
.........
그 국고는 두 말 하면 잔소리 우리 국민들의 혈세가 모여진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의 자산 입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을 살펴 보면 국민들이 혈세를 걷어 만들어 준 귀중한 자금이 구청직원들의 유행비와 사생활 경비로 힘없는 소규모의 공사업체를 이용해 아무런 제약 없이 쓰여 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또 준섭이는 힘이 듭니다.
어느날 준섭이의 사장으로부터 이런 지시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구청에 가서 머시기 만나가지고 같이 가서 전등좀 달아 주고 와, 성남에 집을 하나 사 놓은게 있는데 사람이 사는것 처럼 해놓고 딱지를 받는 다는데 참나 더러워서... 짜증 내지 말고 가서 해줘" 준섭인 사장의 지시 이기에 군소리없이 전등을 챙겨 구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머시기를 만나 함께 성남으로 가는 중간에 구청의 머시기가 그럽니다. 혹시 차에 왁스와 수세미 있냐고 당연히 공사 차량에 그런것이 있을리 만무 하지요. 그러자 그 머시기는 차를 슈퍼 앞에 세월 달라고 하더만 왁스와 수세미를 구입해서 왔습니다. 그 집에 당도 해보니.....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방인데 출입구부터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있고 방안 천장엔 물이 스며들어 도배지는 떨어져 펄럭이고 벽은 썩어서 악취가 진동 합니다. 준섭인 "머시기님 이것 전등을 달게 아니라 도배 하고 집수리 먼저 해야 되겠는데요 이상태에서 전등을 단다고 뭐가 달라 지겠어요, 도배 먼저 하고 전등을 답시다"
머시기 "아녀 그래도 그냥 달아 줘"
머시기는 자기가 관리하는 전기공사 업체를 이용해 돈 안들이고 전등을 달겠다는 심뽀이며 도배와 집수리는 다른 업체를 불러서 돈들여서 하지 않겠다는 마음 입니다. 준섭이는 씨팔 쓰팔 하며 전등을 달아 주었고 머시기가 사온 왁스와 수세미를 이용해 화장실과 씽크대까지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준섭이가 일하는 동안 그 머시기는 부동산 중계상에 들러 이곳의 재계발 문제며 어떠한 방법으로 입주권을 따낼 수 있는지 알아보러 다녔고......
준섭이는 회사일 공치고 공짜로 머시기 집에와서 더러운꼴 보며 일해 주었고 점심은 머시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대접까지 해주어야 했습니다.
준섭이는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 두자는 결심으로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 보지만 건설 현장마다 사람이 넘치고 준섭이가 갈 마땅한 자리가 쉽게 나오질 않습니다. 또 더군다나 점점 커가는 아이들 교육비를 벌겠다며 집에서 몇원짜리 부업을 하며 하루종일 더위와 싸우며 앉아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 쉽게 때려칠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아, 정말 준섭이는 괴롭고 미칠 지경 입니다.
준섭이의 소박한 이웃들 구슬땀을 흘리며 살아 보겠다고 허리띠 졸라매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국민의 돈이 그 알량한 구청 나부랭이들의 히히덕 거림에 쓰여 지고 있는 현장에 철저히 이용 당하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도 괴롭습니다. 준섭이가 그 일을 때려치고 다른 일터를 구하기 위해 하루를 서성이면 준섭이 가족은 한달을 빚에 시달려야 합니다. 마치 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 바퀴처럼 한치의 어긋남을 극복할 여유가 없기에......
준섭이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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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7/22 23:38
양심고백 꺼리라도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이건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일상 같아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생하는 업체에 불이익 없이 정당한 판결을 해주면
좋겠지만 본보기로 공무원 한둘 짜르고 그 상대 업체는 거리로 앉아야 하는 현실에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정말 준섭이는 비겁한 자식이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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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2008/07/22 23:40
나쁜 머시기! G롤 머시기! 멍멍 머시기!
아~ 2MB땜에 '이쁜'호박입에서 욕이 줄줄줄 나오기 시작하더니, 요즘 꽤나 늘었습니다(ㅜㅜ)
이거.. 영.. 호박이미지와는 '안'어울리는데 말이죠.. << 날더우니 미친호박^^
증말 주변에 인간이하들이 많아서 속이 상합니다. 냉장고에 넣어둬도 상한 이 '속'은 원상복구가
안될텐데 말이죠.. 허허~~~~~~~~~!!
준섭이 횽아는 우째야 할까요.. 목구녕이 포도청이니.. ㅠㅠ 으앙~~~~~~~!!-
은파리 2008/07/22 23:52
준섭이는 상한 속을 알콜로 장을 한답니다.
진짜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녀석이 감투질 제대로 하네요
준섭이는 가장 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로또에 당첨이 되면 그 머시기 같은 새끼들 앞에
돈다발 풀어 놓고 주먹이 깨질때까지 머시기 같은 넘들
직살나게 밟아주고 싶다고 하네요.
진짜 한번 태어난 인생이 이렇게 고달플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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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씨 2008/07/23 13:41
아, 진짜..이럴때는 누구도 정답을 주지 못한다는게 너무 슬픈 현실..
준섭이가 행복해졌음 좋겠어요. 저런것들때문에 미치고팔짝뛰는 상황이 되어가지 않고..흑흑
준섭아, 행복해져야해. 제발, 간절히.. -
한상천 2008/07/24 17:08
...전부 그렇지는 않고 저 머시기만 '이상하게' 그렇겠지하는 마음으로 일단 위안을...
솔직히 감투의 위력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소문'을 많이 들어왔는데요...
쩝...우째야 하나........목구멍이 포도청이니...ㅜㅜ
요즘은 대학의 방학 시즌이라 현장마다 알바생들이 많이 눈에 들어 옵니다.
특히 두달정도 일을 해서 목돈을 마련 하기에는 힘든만큼 일당이 높은 건설현장은 알짜베기 알바를 구하는 학생들 에겐 아주 좋은 일터 입니다. 물론 무더위와 힘든 작업여건을 이겨내야 하겠지만 경험을 해본 학생들은 방학때만 되면 알음알음 건설현장을 기웃 거립니다.
몇일전 개인주택의 공사를 갔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 자제를 운반하고 준비작업을 하는 동안 한쪽 에서는 아침일찍 나왔는지 미장공 아저씨와 한 젊은이가 열심히 시멘트와 모래를 섞는 삽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아버지와 아들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는 대충 자제를 운반해 놓고 근처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다가 목을 축이며 그 미장공 아저씨에게도 권하며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미장공 아저씨는 자기의 아들에게 용돈이라도 벌어 쓰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대동해 현장에 나왔고 아들은 대학 2년생으로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해서 가을엔 입대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잠시 그런 대화를 한후 다시 각자의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 부자지간의 작업 풍경을 간간히 보았는데 그 광경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버지 이것은 내가 할테니 잠시 쉬세요"
"아녀, 그렇게 막 모래와 시멘트를 섞는게 아녀 내가 살살 할꺼셔 넌 저 그늘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물이나 떠와라"
"아버지 이거슨 내가 해도 된당게요!"
"야가 뭔 고집이 그리쎄냐 갑자기 힘든일을 하면 몸 다친게 넌 잠시 쉬거라 난 이력이 붙어서 괜찮단게"
그렇게 몇번의 실랑이가 있고부터 두사람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묵묵히 삽질을 했습니다.
미장공인 아버진 처음해보는 힘든일에 행여 아들 녀석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아들은 아들대로 무더운 여름에 나이드신 아버지가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을테고 두 사람은 누가 삽질을 한번이라도 더 할까 싶어 경쟁적으로 삽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두사람의 마음 속에는 뜨거운 부자지간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을테지요. 역시 나이는 못 속이고 먼저 삽을 놓은 사람은 아버지 였습니다. 남은 삽질을 마저한 아들은 그늘로 들어와 잠시 쉬면 좋으련만 "아버지 이제 물하고 섞을까요"
아들은 오늘 아버지가 끝내야할 일량을 들었을테고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의 일량을 끝내야 아버지가 편히 쉴것 같은 조급함에 하나라도 더 해주려는 욕심이 작용 한듯 합니다. 그늘에 앉아서 담배 한모금을 빨며 아버지는 그런 아들 모습을 대견해 하면서도 표정에는 미안한 마음이 역력 했습니다.
20여년전 저도 이와 비슷한 아버지와의 삽질 배틀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기말에 학력고사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가출을 했다가 온갖 고생은 다 하고 2년여만에 폐결핵이란 병을 얻어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 왔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님의 지극정성의 보살핌으로 발병 1년여만에 살도 오르고 원기도 회복되고 팔팔한 20대초의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온적이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가을일을 마친 아버지는 장마철에 무너져 내린 담장을 허물고 벽돌로 담을 쌓는 일을 직접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때는 모래를 근처 강가 주변에서 사람의 힘으로 퍼서 채로 걸러서 사용 했었는데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모래를 강가에서 퍼오면 채로 걸르고 시멘트와 섞어서 미장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삽질을 많이도 해야 했습니다. 그때 아버진 나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것에 마음을 쓰셨고 난 나대로 나 때문에 마음을 조이며 나의 회복을 학수고대 했던 어머님과 아버지께 난 이제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노인이 다되신 아버지께 20대 청년의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어머님과 아버지께 건강을 되찿은 나의 모습을 증거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버진 아버지 였습니다.
한참 일을 할라치면 아버진 오늘은 해가 뜨거우니 그만 하시자 하셨고, 팔이 아프다며 그만 하자고 하셨고 그러면서도 다음날 새볔에 혼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사람 불편하게 아침일찍 부터 웬 호들갑이신가라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것이 아직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을것 같은 나의 건강을 염려한 행동 이었다는것을 알기에는 전 철이 없었습니다.
아버진 나와 함께 일을 할때는 이핑계 저핑계 되며 수시로 엄마를 불러 참과 막걸리를 마시며 나를 쉬게 하셨으면서 내가 잠든 사이 혼자서 하시는 일이 훨씬 진행 속도가 빨랐습니다. 나와 같이 일을 할때는 삽질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 하셨고 수시로 쉬자고 하시면서도 내가 잠든사이 그 많은 모래를 채로 걸르고 벽돌을 날라 담장을 만들고 아버진 그랬습니다.
.......
작업이 무사히 끝나고
연장을 챙겨 가방에 넣고 귀가하는 미장공 아저씨와 아들의 흔들 거리는 어깨가 박자를 맞추듯 즐겁게 춤을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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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7/20 21:53
그런때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커가면서 한번쯤은 아버지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봅니다.
그 목적을 달성 했을때 서글퍼 지고 그때부터
철이 드는것 같아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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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씨 2008/07/20 17:19
은파리님은 좋은 부모님을 두셨어요. 그러니깐 분명 좋은아빠일거고...^^
저는 자식들을 너무 귀하게 키우는것보다는 고생할건 해보라는 그런게 좋아요. 제가 그렇게 커서 그런가?? 하하;; 그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고..대놓고 챙기지 않고 저렇게 은근하게 하는 모습들이 좋아요.
제가 맨날 나중에 난 자식 낳으면 니들처럼 그렇게 닥달해서 안키울거다. 애를 좀 놀게해라. 뭘 그리 어르고 안으로만 싸고도냐 그냥 좀 방임도 하고 어려운것도 알게하고 그래라..이러면 열이면 열, 웃기시네.너는 결혼하면 더할거다. 라는 소릴 듣는지라...뭐 자신할 순 없어도.
그래도 저의 지론은..그렇답니다. ㅋㅋ-
은파리 2008/07/20 21:59
네, 좋은 부모에 좋은 자식들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좋은 아들도 좋은 아빠도 못되는것
같습니다.
자녀들은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저를 비롯한 요즘의 부모들은
세상이 험하다 보니 그렇지 못한것 같습니다.
실예로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 하는것을
허락하는 부모가 의외로 많음을 알았습니다.
저희 달도 그렇거든요...^^
아니거든요..
분명 미미씨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동반자가 될거에요...^^
그 지론을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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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주말마다 비가 내리는게 공식처럼 되어 버렸나 봅니다.
어제 참았던 비가 오늘에는 꽤 많은 양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퇴근길에 차창밖으로 한 손엔 우산을 받쳐들고
다른 한 손에는 우산두개를 꽉 쥐고서 바삐 걸어가고 있는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나 갑니다.
아마도 가족 누군가의 비마중을 가는 중 이겠지요.
학원에 간 어린 딸자식 일 수도 있고 퇴근하는 남편을 마중하러 가는 중 일 수도 있고.....
분명 그 아주머니는 누군가에게 비를 피할수 있는 우산을 전해주러 가고 있습니다.
비마중, 우산마중 - [비가 오는날 비를 피해줄 요량으로 우산을 전해주러 누군가를 마중 가는 일]
사전을 검색해 보았는데 결과를 얻을 수가 없어서 내 나름대로 해석해 봤지만 영 자신이 없네요. 그래도 의미는 대충 이해 하시리라 믿고 이야기 계속 합니다.
비마중을 가는 아주머니를 보자 어린시절 풍경 하나가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담하나로 바로 학교가 있었기에 어머님으로 부터 받는 비마중의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4km 떨어진 중학교를 진학하고서는 두어번 어머님이 전하는 비마중을 경험 했었습니다.
처음 비마중은 경황이 없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두번째 비마중을 온 어머니를 만났을때는 많이 싫었습니다.
그 상황이 같은 동네의 친구 서넛이서 비를 맞고 걸어 오는데 나만 우산을 쓰고 간다는게 싫었고
그때막 사춘기에 접어 들었으니 남자 행세를 많이도 하고픈 시절 이었지요. 의리다 뭐다 하면서 세세한 것에다가
친구간의 의리를 무던히도 갖다 붙이고 싶었던 시절 이었지요.
"엄마 그냥가, 나 친구들이랑 같이 갈께" 이렇게 말할수 있는 숫기도 없었기에 어머니께서 건네주는 우산을 받고서 참 어색하게 귀가 했던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어머니께 뭐라고 하고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난 그때사 어머님은 나에게 우산을 하나 건네 준것도 모자라 당신이 썼던 우산마저도 나의 몸을 감싸주려 하다가 비를 흠뻑 맞고서 왔다는걸 알았습니다.
(친구들의 엄마는 아무도 비마중을 오지 않는데 왜 엄마는 날 아기처럼 감싸고 그래 다음 부터는 아무리 비가 세차게 와도 비마중 오지마.) 이런 말을 하고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비에 흠뻑 젖은 어머니의 모습에 더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며 다음 부터는 절대 비마중 오지마 이렇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어머닌 비마중을 오시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비를 맞는 날엔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 보란듯이 서성였고 그럴때마다 어머닌 마른 가슴을 태웠을것 입니다. 참 그때는 왜 그랬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때문에 속상해 했을 어머님께 너무도 죄송스런 반항 이었습니다.
퇴근해서 샤워를 막 끝냈는데
딸 수경이 한테서 아내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학원에서 나왔는데 학원버스가 막 떠났다고 엄마가 데리러 오면 안되 겠냐며....
사실 혼자 걸어와도 충분한 거리지만 언젠가 귀가길에 중학생 언니들 한테서 봉변을 당한 이후로는 딸아이가 혼자 귀가 하는걸 무서워 합니다.
머리를 대충 털고 내가 갔다오마 하고 아이의 마중을 갔습니다.
저 멀리에 딸아이가 보이고 잠시후 나를 발견한 아이가 함박 웃으며 의외라는듯 "아빠" 하며 달려와 나의 손을 잡습니다. 둘이서 걸으며 많은 이야기는 하지않았만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 어릴적 비마중을 해주신 나의 어머님도 나와 같은 기분 이었을 텐데 난 그때 어머님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했던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도 아이들이 아빠의 마중을 언젠가는 부담스러워 할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이 있습니다.
인생에 한번씩 반항 하는 최초의 시작이 부모에게 하는 시위라고 하잖아요.
떨어지는 빗소리가 "이제야 내마음 알겠니?" 하시는 어머님의 음성처럼 나의 가슴을 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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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단안개 2008/07/12 21:16
우리 어릴 때 우산이 있었나?
우산조차도 귀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등굣길에는 동생과 함께 나섰지만, 학교를 파하는 시간이 다르기에 동생이 누나를 기다려 함께 쓰고 왔지요.
우리 아이들, 큰늠은 열심히도 우산을 들고 학교로 갔습니다.
멀리서도 제 에미를 알아보며 환하게 웃었지요. 수경이처럼요.
아이는 자랑스레 생각을 하였는데, 작은늠은 달랐습니다.
요즘이야 늦둥이가 흔하지만 에미와 지늠이 스른살이나 차이가 나니 친구들 엄마와 늘 비교를 하며, 학교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지요.
이늠 - 한글도 모르는 늠을 입학시켰는데, 학부모 회의나 청소등 - 모든 것에서 저는 제외가 되었습니다.
겨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 참여 - ^^
요즘 가끔 묻습니다. 지금도 엄마가 많이 늙었나?
어릴 때는 숫자로 나이를 생각을 하였는데, 지금은 외모로 나이를 가늠하기에 엄마가 좋다네요.
지늠이나 나나 옷 입는게 가시나거든요.
방학이라 대학생 알바중입니다. - 시청이나 동사무소에서 하는 -
현수막과 벽보등을 떼러 다닌다네요.
하여 엄마가 따라가서 도와줄까?
더워서 안돼요 - ㅎㅎ
잊고 사는 일들을 들추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도 낮에 비가 몇 차례 지나갔습니다.^^-
은파리 2008/07/13 15:35
저는 항상 청개구리 처럼 굴었습니다.
두살 터울의 남동생은 매사에 살갑게 굴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해 항상 동생과 비교되어
엄마의 원성(?)을 샀지요...ㅠㅠ
그런데 자라서 가정을 꾸미고 아빠가 되어보니
엄마의 마음을 백번 이해 할것 같습니다.
나처럼 우리 아이들이 그런 못난 성격이 되지 말아야 할텐데
막연한 불안감을 어쩌지 못하겠네요.
지금까진 아이들이 잘 자라 주었는데 언제 돌출적인 행동을 보여 줄지...
그래요 요즘 아이들은 부모를 나이 보다는 외모로 평가를 하는것 같습니다.
세련되고 젊어 보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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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7/13 15:37
맞아요.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비마중가서 같이 돌아 온다는것 참 좋은 기분 입니다.
그런데 전 어렸을때 그런 좋은 기분을 어머니께 전하지 못한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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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씨 2008/07/13 00:41
비마중..이말 너무 예뻐서 좋아요.
아빠의 마중을 좀 부담스러워하다가 아마도 얼마나 소중한건지 알게될거에요. 내리사랑이라니깐 받은만큼 해야하는거..그런거겠죠?
오늘 하루종일 뒹굴거리면서 영화보는데 비가 계속 내려서 기분 되게 좋았어요. 밖에 있음 분명 짜증났을 비가, 집에 있을때는 너무 좋다니..ㅋㅋ-
은파리 2008/07/13 15:41
빗소리 참 듣기 좋은 소리지요.
가끔은 억수로 내리는 빗방울과 빗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
그리고 마당에 넘실거리는 빗물들..
어릴대 그 광경을 보고서 무척 신나고 들더 했었는데.
비마중, 그렇죠?
그 낱말도 좋고 그 낱말 속에 들어 있는 마음과 보여주는 행동이 참 좋아요.
어떤 영화를 보았을 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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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수시로 엄마와 아빠를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속상하게, 또는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세상사 인간사가 '희노애락'의 범주에서 빗겨 갈 수 없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다른 어떤 것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그 느낌의 차이가 매우 다르다.
이성간에서 느끼는 기쁨이 달콤하다면
부모와 자식간의 기쁨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쁨이라고나 할까, 표현이 합당치는 않겠지만 아이들과 같이 생활 하면서 아이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어떤때 기쁨을 느꼈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첫 아이인 딸 수경이가 태어났을때는 난 지방현장에서 있었고 아내가 출산을 한후 병원에서 퇴원 하자마자 다시 지방 현장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러 했기에 간난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세세히 경험하지 못했고 한달에 두어번 귀가 해서는 아이가 밤에 잠을 안자고 보채기만 해서 고생이 많다는 아내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내가 집에 있는 날엔 아이가 밤엔 잠도 잘자고 우유도 잘먹고 해서 하소연을 한 아내를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두째 아이 역시도 출생후 몇달을 빼고는 주말에나 얼굴을 보아야 했던 세월을 살았다.
엄마들은 아이의 몸짓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자랑한다.
내 경험은 아니지만 이곳저곳에서 들은 바로는 아이가 웃고 손짓하고 몸을 뒤집고 하는게 하나의 이슈가 되고 자랑 거리가 되는 시기가 어느 엄마 한테나 다 있는듯 하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아마도 가장 자랑하고 싶은 대상인 남편이 멀리 있었기에 그러한 기쁨의 맛을 잊고 지냈을듯 싶다.
그렇게 혼자서는 어떠한것도 할 수 없었던 간난아이 때엔 솔직히 보고 싶다는 마음 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던듯 같다. 아내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이가 아프지는 않는지, 또 아프면 어쩌지 하는......
처음 아이가 말을 시작 했다.
"엄마" 라고
내 옆에서 박수치며 호들갑 스럽게 좋아하는 아내가 있었지만 솔직히 아내의 감정 만큼은 기뻐 하지 않았다.
그러다 몇주후
집에 돌아와 아이의 입에서 "아빠" 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내의 눈총을 받을 만큼 좋아 했다.
아이가 나를 기쁘게 한 최초의 언어는 나를 인정하고 불러줬던 "아빠"란 단어다.
"요 조그만 녀석이 나를 아빠라고 불렀어
나를 보고서 아빠라고 했다고"
그 날 이후로 난 기를 쓰고 주일마다 쉬기를 강행 했고(그때 당시 건설현장은 연중무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쉬는날이 없었다) 집에 와서는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는 호사를 즐겼다. 그러나 아이는 아빠란 말로 나를 기쁘게 해준 이후로는 또다시 긴 잠복기를 가졌다.
때때로 사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나를 놀라게 했지만 그것이 큰 기쁨을 주지는 않았고 응당 이제는 말문이 트일때가 되었지 라고 생각 했으니까.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며 말도 늘고 말하는 수다도 많아지면서 아이와 손 잡고 데이트를 했다.
"아빠 이건 뭐야"
"이건 뭐야"
"이건 또 뭐야"
거리의 모든것을 꼭 알고야 말겠다는듯이 집요하게 물어온다.
이것이 귀찮은 물음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하나하나 대꾸를 해주며 아이와의 언어 소통을 시작 했다.
그때 역시도 기뻤다.
또 조금 자라서
이렇게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간단한 조립식 장난감을 들고서 이렇게 물어오는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고 아빠는 꼭 할 수 있을것이란 그 믿음에 기쁘게 아이의 조립을 해줬던것 같다.
아이들은 빨리 자란다.
그러면서 점점 아빠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아이와의 대화속에서 기쁨을 찿기가 점점 어려워 진다.
요즘 나의 입장이 그러 하니까......
외식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비집을 갔다.
엄마와 아빠가 집어 주는 잘 익은 고기를 연신 맛나게 받아 먹기만 하던 아이의 입에서
"아빠 엄마도 드세요"
순간 가슴이 훈훈해 오며 한 없는 기쁨이 몰려 왔다.
항상 받아 먹기만 할줄 알던 아이들이 자신들의 입만 생각 할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말을 하고 있다.
그 작은 한 마디에 그 동안 아빠의 수고(?)를 몰라 준다고 삐졌던 나의 마음이 봄눈 녹듯이 녹고 양 어깨에 힘이 들어 간다.
아이가 따라주는 소주를 한잔하니 세상이 다 내것이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진다.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고 자라는 만큼 그 기쁨을 만드는 능력이 커지고 창의적인 사고를 한다.
세상은 힘들어도 아이들의 웃음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것이 세상이다.
아빠들은
아이들의 아빠로 남아 있을때가 가장 행복하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어떤 말에 기쁨을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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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Media 2008/07/11 00:20
행복하시겠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생각보다 어리네요. 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너무 커버려서 예쁜 딸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그나저나....맨 아래 추천버튼 모음은 왜 호박님 것으로 죄다 붙이셨어요?^^-
은파리 2008/07/11 07:54
위의 사진은 몇년전의 사진이니 지금은 몇년 더 커 있습니다.
가능 하다면 아들과 딸이 있는게 생활하는 재미가 더 있습니다.
행복은 늘상 주위에 있는것 같아요.
헉! 아이고 필로스님이 아니었다면 그냥 호박님 광고 블로그가 될뻔 했네요...^^
얼마전 호박님께 부탁해서 얻은건데 수정을 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 했나봐요....
지금은 삭제 하고 집에 들어가서 수정을 봐야 겠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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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7/11 20:43
그렇게 되는것 같아요.
특히 엄마들은 아이가 생기몀서 자신의 이름을 쉽게 잃는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그러했죠.
요즘은 여성의 사회 활동이 많아서 덜 하지만...
부지깽이님 이름이 정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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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2008/07/11 12:04
아웅~ 보면서 입이(^----^) 막 요레요레 됐어요~☆
요즘같은날 거리를 한두어시간 걸어다니면 온몸이 아이스크림 녹듯 스르르~ 녹아버리는것
같아욘(ㅠㅠ) 이럴때일수록 잘챙겨먹어야 한다고 막 먹었더니 배만나와(ㅠㅠ) 뷁!
호박도 은파리님처럼 행복해야징..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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