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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19 아버지와의 삽질. (4)
- 2008/05/22 "이게 뭐야? 딱지 끊었네" (2)
- 2008/05/18 성남 인력시장에서 가슴으로 울다. (23)
- 2008/05/16 영주의 전성시대 [부제:어기기 대장]
- 2008/05/06 고추 심기. (6)
요즘은 대학의 방학 시즌이라 현장마다 알바생들이 많이 눈에 들어 옵니다.
특히 두달정도 일을 해서 목돈을 마련 하기에는 힘든만큼 일당이 높은 건설현장은 알짜베기 알바를 구하는 학생들 에겐 아주 좋은 일터 입니다. 물론 무더위와 힘든 작업여건을 이겨내야 하겠지만 경험을 해본 학생들은 방학때만 되면 알음알음 건설현장을 기웃 거립니다.
몇일전 개인주택의 공사를 갔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 자제를 운반하고 준비작업을 하는 동안 한쪽 에서는 아침일찍 나왔는지 미장공 아저씨와 한 젊은이가 열심히 시멘트와 모래를 섞는 삽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아버지와 아들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는 대충 자제를 운반해 놓고 근처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다가 목을 축이며 그 미장공 아저씨에게도 권하며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미장공 아저씨는 자기의 아들에게 용돈이라도 벌어 쓰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대동해 현장에 나왔고 아들은 대학 2년생으로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해서 가을엔 입대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잠시 그런 대화를 한후 다시 각자의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 부자지간의 작업 풍경을 간간히 보았는데 그 광경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버지 이것은 내가 할테니 잠시 쉬세요"
"아녀, 그렇게 막 모래와 시멘트를 섞는게 아녀 내가 살살 할꺼셔 넌 저 그늘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물이나 떠와라"
"아버지 이거슨 내가 해도 된당게요!"
"야가 뭔 고집이 그리쎄냐 갑자기 힘든일을 하면 몸 다친게 넌 잠시 쉬거라 난 이력이 붙어서 괜찮단게"
그렇게 몇번의 실랑이가 있고부터 두사람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묵묵히 삽질을 했습니다.
미장공인 아버진 처음해보는 힘든일에 행여 아들 녀석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아들은 아들대로 무더운 여름에 나이드신 아버지가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을테고 두 사람은 누가 삽질을 한번이라도 더 할까 싶어 경쟁적으로 삽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두사람의 마음 속에는 뜨거운 부자지간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을테지요. 역시 나이는 못 속이고 먼저 삽을 놓은 사람은 아버지 였습니다. 남은 삽질을 마저한 아들은 그늘로 들어와 잠시 쉬면 좋으련만 "아버지 이제 물하고 섞을까요"
아들은 오늘 아버지가 끝내야할 일량을 들었을테고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의 일량을 끝내야 아버지가 편히 쉴것 같은 조급함에 하나라도 더 해주려는 욕심이 작용 한듯 합니다. 그늘에 앉아서 담배 한모금을 빨며 아버지는 그런 아들 모습을 대견해 하면서도 표정에는 미안한 마음이 역력 했습니다.
20여년전 저도 이와 비슷한 아버지와의 삽질 배틀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기말에 학력고사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가출을 했다가 온갖 고생은 다 하고 2년여만에 폐결핵이란 병을 얻어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 왔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님의 지극정성의 보살핌으로 발병 1년여만에 살도 오르고 원기도 회복되고 팔팔한 20대초의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온적이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가을일을 마친 아버지는 장마철에 무너져 내린 담장을 허물고 벽돌로 담을 쌓는 일을 직접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때는 모래를 근처 강가 주변에서 사람의 힘으로 퍼서 채로 걸러서 사용 했었는데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모래를 강가에서 퍼오면 채로 걸르고 시멘트와 섞어서 미장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삽질을 많이도 해야 했습니다. 그때 아버진 나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것에 마음을 쓰셨고 난 나대로 나 때문에 마음을 조이며 나의 회복을 학수고대 했던 어머님과 아버지께 난 이제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노인이 다되신 아버지께 20대 청년의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어머님과 아버지께 건강을 되찿은 나의 모습을 증거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버진 아버지 였습니다.
한참 일을 할라치면 아버진 오늘은 해가 뜨거우니 그만 하시자 하셨고, 팔이 아프다며 그만 하자고 하셨고 그러면서도 다음날 새볔에 혼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사람 불편하게 아침일찍 부터 웬 호들갑이신가라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것이 아직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을것 같은 나의 건강을 염려한 행동 이었다는것을 알기에는 전 철이 없었습니다.
아버진 나와 함께 일을 할때는 이핑계 저핑계 되며 수시로 엄마를 불러 참과 막걸리를 마시며 나를 쉬게 하셨으면서 내가 잠든 사이 혼자서 하시는 일이 훨씬 진행 속도가 빨랐습니다. 나와 같이 일을 할때는 삽질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 하셨고 수시로 쉬자고 하시면서도 내가 잠든사이 그 많은 모래를 채로 걸르고 벽돌을 날라 담장을 만들고 아버진 그랬습니다.
.......
작업이 무사히 끝나고
연장을 챙겨 가방에 넣고 귀가하는 미장공 아저씨와 아들의 흔들 거리는 어깨가 박자를 맞추듯 즐겁게 춤을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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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7/20 21:53
그런때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커가면서 한번쯤은 아버지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봅니다.
그 목적을 달성 했을때 서글퍼 지고 그때부터
철이 드는것 같아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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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씨 2008/07/20 17:19
은파리님은 좋은 부모님을 두셨어요. 그러니깐 분명 좋은아빠일거고...^^
저는 자식들을 너무 귀하게 키우는것보다는 고생할건 해보라는 그런게 좋아요. 제가 그렇게 커서 그런가?? 하하;; 그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고..대놓고 챙기지 않고 저렇게 은근하게 하는 모습들이 좋아요.
제가 맨날 나중에 난 자식 낳으면 니들처럼 그렇게 닥달해서 안키울거다. 애를 좀 놀게해라. 뭘 그리 어르고 안으로만 싸고도냐 그냥 좀 방임도 하고 어려운것도 알게하고 그래라..이러면 열이면 열, 웃기시네.너는 결혼하면 더할거다. 라는 소릴 듣는지라...뭐 자신할 순 없어도.
그래도 저의 지론은..그렇답니다. ㅋㅋ-
은파리 2008/07/20 21:59
네, 좋은 부모에 좋은 자식들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좋은 아들도 좋은 아빠도 못되는것
같습니다.
자녀들은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저를 비롯한 요즘의 부모들은
세상이 험하다 보니 그렇지 못한것 같습니다.
실예로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 하는것을
허락하는 부모가 의외로 많음을 알았습니다.
저희 달도 그렇거든요...^^
아니거든요..
분명 미미씨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동반자가 될거에요...^^
그 지론을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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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정집 리모델링 공사를 갔습니다.
일의 내용은 임대업자가 빌라 또는 다가구 주택을 매입해서 간단한 집수리를 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재임대를 하고 있는데 저희 회사가 전기공사분을 맡고 있어서 여러곳을 돌아 다니며 노후된 전기시설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일의 특성상 주택가 골목골목을 공사 자재를 싣고 다니는 관계로 일을 하는 동안의 주차 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닙니다.
가뜩이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유류값 때문에 골목골목마다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어딜가나 빼곡 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다니는 주택단지들이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골목들 이다보니 한건물에 가구수는 많고
골목은 좁고 또 가구수마다 차한대씩은 있기에 주차 사정이 참 난감 합니다.
공구만 달랑들고 가서하는 일이라면 차를 주차하기 편한 곳에다 세워 놓고 몸만 걸어들어가서 일을 하겠지만
트럭 뒤에는 등기구며 배선기구 각종 공사자재들이 실려 있기에 꼭 그 집앞에 주차를 해야 일의 효율이
생깁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차를 멀리 주차 할수 밖에 없겠지만은......
오늘도 여지 없이 골목골목마다 차들이 많습니다.
공사를 해야할 집에 도착하고 보니 그 집앞에는 다른 차들이 주차 되어 있고 다행히 바로 옆집 담장 옆에 트럭
한대 주차 할 공간은 있기에 다행이다 싶어 차를 그곳에 주차해 놓고 기본적인 공구와 자재를 내렸습니다.
그런후 집안의 구조를 잠시 살피고 있는데 저희차가 있는 곳에서 차주를 찿는 소리가 들려 오기에 "네" 하고
차곁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어느 한 아저씨가 차를 당장 빼라는 겁니다. 이유는 저희차가 그 아저씨의 대문을
조금 가렸다는 이유 입니다. 큰 대문이 있고 큰 대문 옆에 사람들이 주로 드나드는 작은 출입문이 있었는데
주 출입문은 피해서 저희차는 그 아저씨집의 항상 잠겨 있을것 같은 큰대문을 조금 가렸었는데 남의집 대문을 가리면 어떻 하냐며 당장 빼라는 겁니다.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옆집 등기구 교체 해주러 왔는데 1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당장 큰대문을 쓸일이 없으면 사정좀 봐달라고.... 막무가내 입니다. 사실 얌체처럼 근처에 일보러
왔다가 그곳에 차를 몇시간씩 상습적으로 주차한다면 안될일이겠지만 옆집에 일하러 와서 잡다한 자재들이
집집마다 들어가는것이 제각각 이라 일하면서 꺼내써야 하는데 좀 이해를 해주었으면 했지만 전혀 이해 해줄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그 골목이 그 아저씨의 소유는 아닐텐데 그리고 수시로 손님을 맞이 해야할 영업집도 아닌데 대문을 조금 가렸다는 이유로 차를 빼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놓고 몇번을 차와 집을 오가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1시간이면 될일을 2시간이 지나서야 일을 마쳤습니다.
허기 졌지요 오늘 이렇게 대여섯 군대를 돌아서 일을 끝내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고 차는 멀리 있고 남은 자재와
공구를 낑낑 거리며 차있는 곳까지 나르고 다시 싣고 정리를 하고 있는 중에 같이 일하던 동료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려 옵니다."아, 씨팔 이게 뭐야 딱지 끊었네" 대문짝만하게 앞 유리에 주차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맥이 탁 풀립니다. 일 하다가 이런류의 경비는 회사에서 책임져 주는것도 아닌데......그리고 거주자 주차우선
이란 공간도 거주자의 차가 없더라도 그곳에 주차하고 일을 보게 되면 딱지를 끊는 행정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순간 머리가 뜨끈 거리고 가슴에 한웅큼의 부아가 울컥 솟았습니다.
그깟 벌칙금이 아까워서 화가 나는게 아닙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화가 나고
차를 빼라는 그 아저씨께 차근차근 이해를 구하지 못한 내 자신이 화가나고 거주자의 차가 없더라도 다른차가
그곳에 주차하면 안된다는 행정이 화가나고 또 속상한 내 모습을 보았다는게 화가 나고.....
간혹 일을 하면서 때로는 속상한 일도 있지만 참 따뜻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끔 저희가 공구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작은 부탁들을 합니다.
싱크대가 떨어질려고 한다 전등이 안들어 온다 그때마다 쉽게 거절을 못합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또
작은 손길에 아이처럼 좋아하고 진심으로 고마워 하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간단한 부탁들은 우리의 공사분이 아니어도 들어 주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보여주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표정들이 얼마나 저를 행복하게
만들던지요.... 오늘은 비록 그 아저씨께 원망어린 마음이 있었지만 지난일터에서 있었던 경험을 링크 걸어
봅니다. 그 두분 다 지금도 건강 하시길 빌며.......
노동일기 추천글 → 조용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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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_Gatsby 2008/05/23 12:44
함께 산다는 것이 참 즐거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죠.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 진다고 생각하지만, 저또한 그 범주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로 조금만 더 이해하고 배려 한다면 살맛 나는 세상이 될텐데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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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5/23 21:09
아마 저 역시도 많은것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식치 못하는 각박함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를일 입니다.
가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세상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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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피뢰침을 세우기 위한 기초를 묻기 위해 땅을 파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용역회사에서 사람을 불러 같이 일을 하면 되겠으나 현장에 가는길에 성남 복정동 사거리에 있는
인력시장에서 사람을 데려 가기로 했습니다. 아침 일곱시 인력시장에서 사람을 구하러 가는 입장 치고는
늦은 시각 입니다. 인력시장이 새볔 5시 이전부터 형성이 된다고 하니 늦어도 꽤 늦은 시각 이었지요.
현장생활을 하면서 인력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본지라 인력시장의 풍경은 그리 낯설지는 않았지만
처음 가보는 인력시장의 모습이 궁금한 마음으로 복정동 사거리에 트럭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어느 한 할아버지께서 사람을 구하러 왔냐며 물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하자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가슴팍 옷을 부여 잡으며 나좀데려가 달라고 애절하게 애원 합니다. 어찌나 나의 가슴팍을 부여잡은 손이
간절 하든지 할아버지의 손을 풀어 놓으려고 힘을 썼지만 할아버지는 절대로 나의 가슴팍을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저씨 이손 놓으세요! 그리고 땅파는 힘든일을 해야 하는데 아저씨는 좀...."
"나 땅 잘 판다니께, 벌써 일주일째 공치고 있어 나 좀 데려가 주게"
할아버지의 음성이 나의 가슴팍을 후려 쳤습니다.
그런 실갱이가 있자 골목에서 대여섯명의 사람이 뛰쳐 나오며 서로 자기를 데려가 달라며 차에 매달렸습니다.
순간적으로 할아버지께 가졌던 동정심을 접고 냉정한 마음으로 돌아와 젊고 일을 잘 할것 같은 아저씨 둘을
지명해 차에 태워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사람들과 하루를 일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력시장에 사람을 구하러 승합차가 들어오면 자동차문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사람이 매달린다고 합니다.
싼 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요즘은 더욱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이 든다고 하고 성수기에는 그 골목에만
수백명의 사람들이 새볔에 나와 기다린다고 하고 그나마 일감을 얻어 나가는 사람은 절반도 안된다고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매달렸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하루종일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회사 소속의 노동현장 일을 하지만 저 역시 일당쟁이 노가다 인생 입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얼마동안 일을 할지도 모르고 이곳을 나가면 저도 그 할아버지와 똑 같은 처지의
노가다 인생 입니다. 할아버지 보다는 젊다는 이유 하나 빼고는 똑 같은 처지 입니다.
그러니 그 할아버지의 간절함이 결코 남의 일처럼 여겨지질 않았습니다.
지금 건설 현장마다 손이 제일 필요한 잡부일은 거의가 중국동포들이 싼 임금을 무기로 장악하고 있고
기술력이 필요한 부분에도 그들이 잠식해가는 추세 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의 환경이 있는데
그들과 같은 임금을 받고서 생계를 유지 한다는 것도 불가능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달에 많이 일해봐야
고작 10여일 100여만원의 수입으로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은 절망적인 삶의 연속 이지요.
건설현장의 기술은 다양 합니다.
조적(벽돌)공,미장공,철근공,형틀목수,인테리어목수,페인트공,설비,내선전공,소방,통신,창호,도배,용접공,.....
그 방면마다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일도 많이 하고 대우도 괜찮지만 그것도 물가의 인상율에 비해
임금은 10년전 일당 그대로 있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그리고 그런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잡부일부터
시작해서 몇십년을 그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배트랑들 입니다. 그런데 사용자측에서는 옛날 노가다 곤조
버리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를 강요 하지만 대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노가다놈들 이라고 천대 하면서
마음가짐만 신사고를 강요 하니 처지가 딱하지요. 왜 우리나라는 건설현장 인력들을 천대 할까?
어느 건설 회사고 대규모 공사를 완공하면 광고하고 홍보 하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그 공사를 완공 하기 위해서 그들이 노가다놈들 이라고 천대하는 수 많은 파트의 배트랑 인력이
동원 되었다는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회사가 그 일을 해냈다고들 하지요.
삼성이 삼성의 인력만으로 조그만 아파트 하나만 이라도 지을 수 있을까요?
지금 대한민국 시스템 에서는 절대 그렇지 못합니다. 이름도 없고 소속도 없는 노가다꾼들이 땅을 파고
벽돌을 쌓고 전기배선을 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해야 그나마 아파트 한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삼성의 레미안, 대림의 편안세상, 현대의 아이파크, 엘지의 자이, 이런 메이크
아파트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완공된 노가다꾼들의 작품 입니다. 세상을 만드는 최일선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고 있는 노가다꾼들의 대우는 왜이리 처참한지.....
한국은 외형적으로는 발전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너무도 빈약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점점 사회가 발전해 가면서 그 내용물도
성장해 가야 하는데 겉 모습과는 달리 그 속 내용물은 썩고 병들어 있습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해마다
임금투쟁을 하는 모습속에는 하루 일감을 위해 새볔에 나와 인력 시장을 서성이는 수많은 노가다들의 희생이
있었다면 나의 억지 일까요? 저는 대기업 현장도 많이 다녀본 경험상 대기업들이 하청회사에 행하는
횡포를 많이 목도 했고 그런 결과로 우리 같은 노가다꾼들도 많은 피해를 입고 있음을 실감 합니다.
정상적인 구조로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한국의 노동자들을 선호 해주는 시스템이 그리 어려운가요?
저에게 매달렸던 할아버지의 그 간절한 눈빛을 무시하고 냉정히 돌아서야 했던 것에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내탓이 아니라고 자위 하지만 가슴 한쪽이 서글퍼 오는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그 할아버지의 삶도 애절하고 오늘 저와 같이 일했던 두 아저씨들 역시도 군대가있는 아들이 제대하면
복학해야 하는 경제적 책임에 짓눌리는 입장이고 보면 노가다 인생은 누구나가 실날같은 생명줄만 간신히
붙들고 있나 봅니다.
저와 같이 일을 했던 두 아저씨나 저에게 매달렸던 그 할아버지나 내일 새볔 또 그 자리에서 현실의 풍경으로
남아 하루를 기다리겠지요.
"나 땅 잘 판다니께"
그 쇠소리 같은 음성에 삶의 처절함이 너무도 간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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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꿈틀 2008/05/18 03:09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천민자본주의에 심취한 인간들이 많은지,, 주객이 전도된 지금의 상태가 지극히 당연한듯 오랜 관성에서 헤어나오길 주저하고 있습니다. 뒤틀린 현실을 되돌릴 방법이 현재로서 불매운동 외에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구매행위에 기업의 도덕성을 최우선 고려대상으로 함으해서 기업과 사법부를 압박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도덕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행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신세 한탄만 남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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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fql 2008/05/18 18:44
이런 글이 끝에 있다니..선두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 할아버지같은 분은 동사무소같은
데 가서..뭔가..도움을 청하는 건 어떨지..우리 동네도 그렇게 절박하지 않은 분도 쌀도 받고 하던데..독거 노인이면...
그리고 이 글 쓰신 분..대체로..험한 분야에 종사하시면서...이런 섬세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하네요.. 이런 데 글 올리는 것도 보통 정성갖고는 안될텐데... 드라마보고 후기 겸 평 쓰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죠..-
은파리 2008/05/18 20:26
글쎄요 제가 그 할아버지에 대한 자세한 정황은 모릅니다만은 같이 일했던 아저씨들에게서 인력시장의 상황을 들어본바로는 그렇게 일감을 찿다가 정 못찿겠으면 무료급식소를 찿아가 끼니를 떼우고 노인들이 많이 찿는 공원근처 같은 곳을 배회 하다가 집에 들어 간다고 합니다. 아마도 가족들 보기가 미안 해서 그러겠지요.
그렇게 일감을 찿는 사람들 대부분은 부양가족이 있다거나 하는 사람들 입니다. 홀몸 이라면 그렇게 치열한 현장을 마다 하겠지요.... 그래서 더욱 그 할아버지 모습이 아른 거립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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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_Gatsby 2008/05/19 07:26
마음이 참 아프죠..자본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를 넘어서는 문명사회가 두렵네요. 사실 주위에 이런 분들 참 많죠. 가슴이 답답하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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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5/19 20:30
사실 저와 같은 일용직들은 인간관계가 대단히 중요 합니다.
그래야 서로 현장과 현장을 연결하며 일을 할수 있거든요.대부분 그렇게 생활을 합니다만은 요즘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은 부분을 잠식 하면서 기술이 없는 일용직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일용직 개인의 문제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인데 부양가족들의 문제가 더 심각 하지요. 답답 하기만 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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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5/19 20:36
이스트라님 아버님께서는 분명히 현장에서 장인일것 입니다. 많은 파트별로 몇십년씩 일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죠 그런분들은 또 국가의 자산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건설현장의 다수의 노동자들은 일당외의 보상이 전무 하다는것이 서글퍼 집니다. 몸이라도 아프면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니...
관심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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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2008/05/19 16:00
저희 아버지도 건설쪽 일하시는데 말이 관리소장이지 거의 노가다세요 ㅠㅠ 게다가 나이도 많으셔서...아빠가 저런 일 당하시기 전에 빨리 취업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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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5/19 20:41
이리나님 아버님께서는 저렇게까지야 되지 않으시겠죠.
일면 많은부분 인력시장을 전전하는 분들에게도 책임은 있습니다. 사실 조금만 노력하고 조금더 성실하게 인생을 산다면 일은 알음알음 같이 다닐수가 있습니다. 다만 어쩌지도 못하고 저런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는 누구도 장담 못하는 경우도 있을것 입니다.
모두다 흡족치는 않아도 생활을 할수있는 벌이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좋은 직장 구해서 성공 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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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5/19 20:50
네, 살기 힘든 세상 입니다.
어휴 너무 적게 버는군요.
뭐 여러 노력을 하셨겠지만 혹시 용역 회사는 가보셨는지요? 힘드시더라도 용역회사에 가셔서 당분간은 그곳에서 일감을 찿으시고 현장에 가시면 사람을 많이 사귀세요.
필히 연락처 교환 하시고... 건설 현장은 부분부분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 기술이 지금까지 없다면 기술을 배우세요. 기술을 배우는 방법은 현장일을 하는 사람들과 한팀이 되어 움직이는게 제일 빠름니다. 용역회사에서 현장을 소개받아 일하시고 그 현장에서 사람을 사귀면 용역회사 통하지 않고도 쉬지 않고 일할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힘드시더라도 조금 더 고생하는셈치고 조금만더 악착같이 노력 하세요.
꼭 성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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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 2008/05/20 01:11
자본주의 시대의 서글픈 한 단면입니다. 누군가는 착취하고 누군가는 착취당하는.. 하지만 '정도'문제네요. 확실히 우리나라가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열악하다는것은 호주에서 좀 지내다보니 알겠더군요. 물론 호주와 우리나라 상황이 같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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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5/22 20:48
그렇게 하루일감을 얻기위해 새볔같이 나와서 기다리다가
일감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가하는 사람들 모습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남의일 같지 않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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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 2008/06/11 11:21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그저 배부른 투정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세상인데..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히 살아가야겠단 생각을 해봅니다...그저 이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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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리 2008/06/11 22:33
부족한 글에 따듯한 마음의 댓글 감사 합니다.
저는 삶을 누군가를 위해서는 희생 하지 못할것 같습니다. 솔직히....
하루하루 세상과 자기자신에게 성실한 자세를 보여준다는것이 어쩌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위해서도 가장 현명한
방법 같습니다.
즐블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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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nce 2008/06/26 01:04
에공... 휴.. 한숨이 나오네요.. 저도 지금 우연찮게 물론 홍보일이긴 하지만 큰 사찰 건축현장에 있거든요. 거기 현장소장님이 여러 건설현장 다니면서 노조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 많이해 주셨는데... 사는게 참 빡빡하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힘내야겠죠??^^
어린시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친구 영주가 있었다.
영주는 각종 잡기에 능했고 더 탁월했던 능력은 어기기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
그때 우리 친구들은 양지바른 동네 어귀에서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자주 했고 잣치기며 칼싸움도 했고
달이 밝은 보름날에는 경찰 놀이도 했었다. 시골의 초등 학교때는 선후배가 없었고 그때 친구처럼 지낸 터울이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아이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친구로 먹고 지냈던것 같다.
영주는 나보다는 한살 아래의 친구지만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년으로 다녔던 불알 친구다.
영주는 구슬치기에서 져본적이 없다.
영주는 딱지치기에서 잃어 본적이 없다.
무슨 게임을 하든지 가장 마지막의 승자는 언제나 영주였다. 영주가 잡기에 능한 재주가 있기도 하겠지만 더욱 그를 승자로 만드는것은 탁월한 어기기 능력 이었다. 구슬치기를 하다가 큰목소리로 니가 이겼네 내가 이겼네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곳에는 언제나 영주가 있었다. 구슬이 스치듯 지나가도 맞추었다고 어기고 상대방이 스치듯 맞치면 아슬아슬하게 비켜 갔다고 하고
술래 잡기에서도 니 머리카락 다섯가닥 보였다고 어기고 영주의 억지 부리기는 우리들의 골목세계에서는
전설 이었다. 어떠한 상식적이고도 순리적인 설득을 하여도 영주의 어기기는 굽히지 않았다.그러나 그런 막강한 화력을 지녔던 영주의 어기기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영주의 어기기에 반발을 했고 더러는 코피가 나도록 싸우기도 했고 영주의 어기기를
깨부수기 위해서 많은 친구들이 도전을 하였지만 깡다구가 보통이 아닌 영주를 굴복 시키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진화는 막을수 없는 법 아이들은 커가면서 영주를 멀리 하기 시작 했고 심지어는
연합전선을 구축해 영주를 포위 하기에 이르렀다.
깡통차기라는 놀이는 술래가 깡통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은 술래 눈을 피해 숨는다 그러면 술래는 숨어 있는
친구를 찿아내야 하고 숨은 사람은 술래가 지켜야할 깡통과 멀어진 사이 깡통을 발로 차서 멀리 보내고
다시 숨는다. 술래는 깡통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하고 술래는 마지막 숨은 사람까지 찿아내어야
술래에서 벗어 날수있는 놀이다. 물론 마지막 사람을 찿아낼때까지 깡통을 잘 지켜야 하고 마지막까지
술래에게 들키지 않은 사람이 깡통을 차버렸다면 그동안 찿아낸 사람들 까지도 다시 재빨리 숨어 버리면
된다. 이 놀이에서 영주는 항상 술래다. 설사 다른 친구가 술래가 되면 친구들은 깡통을 찰 생각은
않고 일부러 술래에게 모습을 보이고 그러다가 영주가 술래가 되면 모든 아이들은 결사적으로 깡통을 차려고
덤빈다. 언젠가 그런 친구들의 단합으로 무려 반나절 동안을 영주 혼자 술래를 했어야 했고 저녘무렵
엄마가 밥먹으라는 소리에 영주는 끝내 울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철부지적 추억 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상식적 이고도 합리적인 소통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온 영주에게 친구들이 심판을 내렸던 사건 이었다.
그렇게 영주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어기기는 친구들이 성장 하면서 철퇴를 맞았고 어기기로 한시대를
주름잡았던 영주는 고향 친구들의 모임에서 술안주로 씹히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어기기로 무장한 정부가 들어섰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정부를 실용정부라고 하지만 어디 써먹을대가 있어야 실용적 이라고 인정해 주지
써먹을 것이라고는 국민들 복창 긁어대는 재주 하나 밖에 없는듯 하다.
얼마전 청와대 대변인 이동관이 천주교사재단의 떡찰 발표전의 대응 브리핑 동영상의 코메디는 고사하고
소고기 청문회에서 보여준 이계진 의원의 안면몰수 내공은 가히 어기기의 진수다.
"내가 언제 그런말 했습니까" 절대로 그런말 하지 않았고 생사람 잡지 말란다. 정말 국민들 모두를
귀막고 눈먼 사람들로 알고 있나보다. 불과 몇분도 안되어 그 어기기의 실상은 들통나 버렸지만
이것이 지금 실용정부라고 하는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작태다.
소신있는 정치인 이라는 색깔이 있었던 이계진 의원의 그 안면몰수의 과감성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는 안전하다고 어기고 있다.
만약에 촛불집회와 네티즌들의 염려성 충고와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님과 엠비시의 피디수첩이 없었다면
그들이 안전하다고 지금도 어기고 있는 광우병 소고기가 아무런 제약 없이 무더기로 들어올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 이지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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